나주김씨

羅州金氏

나주 김씨(羅州 金氏)는 전라남도 나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역사시조 김운발(金雲發)은 경순왕의 둘째 왕자(막내아들, 李子) 김황의 맏아들로 고려조에 문하시중에 수작되고 나주군(羅州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나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증보문헌비고>>에 시조 김운발[신라 경순왕의 막내아들(李子)은 역사에는 그 이름이 없는데, 신라가 망한 뒤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이름을 범공(梵空)이라 하고 해인사에 머물다가 죽었다. 산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아들 김운발이 있었는데, 나주로 분적(分籍)하였다 고 수록되어 있다.김극순의 현손 김대경(金臺卿)은 고려 말 1326년 문과 급제 후 보문각 대제학에 오르고, 문장이 뛰어나 동문선에 이름을 올렸다. 목은 이색과 함께 나주 안로현으로 유배되어 생활하였다.조선시대 들어 김정준(金廷雋)은 태종때 동북면 난을 평정한 공을 세우고, 전주 부윤(全州 府尹)·중군 총제(中軍 摠制)를 역임하며 가문을 중흥시켜 후손들이 그를 중시조(中始祖)로 모시고 있다.김경석(金景錫)과 김적(金適)은 을묘왜변때, 김충수(金忠守)는 임진왜란 때 무신으로 왜구를 격퇴시키는 큰 공적을 세웠고, 무안 우산사(牛山祠)에 제향되었다.본관나주는 전남의 중서부에 위치한 고장으로, 백제시대에는 발라군이었다가, 신라 경덕왕이 금산군으로 고쳤다. 후백제시대에는 견훤이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고, 후에 고려 태조 왕건이 점령하여 나주라 개칭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거란의 침입으로 왕이 일시 이곳에서 피난한 인연이 있어 목으로 승격되었다.조선 세조 때에 나주 목사는 진을 두고 영암·영광의 2군과, 함평·고창·광산·장성·진원·무장·남평·무안의 8현을 관할하였다. 조선후기 면리제가 정비되면서 나주목은 38개 면과 현 신안군 일대 30여개 이상의 도서를 관할하는 목사고을로 많은 호구와 전결을 보유하고 교통으로 청암도와 조은으로 영산창을 가진 큰 고을이었다.1895년 (조선 고종 32)에 지방제도 개혁으로 전국을 23부로 구분하면서 나주부가 되어 관찰사가 주재했다. 이듬해에 다시 전국 행정구역을 13도로 개편하면서 나주부가 폐지되고 나주목이 나주군이 되어 전남의 1등군이 되고, 전남의 행정중심이 광주로 옮겨졌다.

나주김씨의 시조

김운발

김운발의 인생 개요

김운발(이)가 0935년 한국 충북 진천군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김굉(은)는 22세였고, 그의 어머니 하씨(은)는 19세였다. 그는 구씨(와)과 적어도 여섯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는 0997년 그의 고향에서 62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한국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하동에 묻혔다.

전라남도

전라남도

가족 연대표

780

810

840

870

900

930

960

990

1020

1050

1080

김운발
0935년–0997년
구씨
0934년–0995년
김인륜
0800년–사망
김중륜
0955년–사망
김성륜
0956년–사망
김인륜
0960년–1028년
김지경
0961년–사망
김원정
0962년–사망

가족 기록 및 족보 보기

패밀리서치는 전 세계 수만 개 이상의 기록 보관소, 도서관, 가족 및 종교 단체 등과 제휴하여 소중하고 가치있는 가족 역사 기록을 디지털화하고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도록 제공합니다.

나주김씨의 족보

패밀리서치 계정으로 로그인하시면 언제든 편리하게
내 성씨 및 본관의 족보를 무료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가족 역사 여행을 시작하려면
계정을 만드세요.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