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김씨

南陽金氏

남양김씨(南陽金氏)는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의 후예(後裔)로서 고려 의종(毅宗 : 제18대 왕, 재위기간 : 1146∼1170) 때 사람인 김적(金頔)을 시조(始祖)로 하여 왔다. 그는 나라에 변란(變亂)이 있음을 알고 가족과 함께 남양(南陽)의 산곡(山谷)에 이거(移居)하여 살았으나, 그 후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정확한 계대(系代)를 알 수 없어 후손들은 태조(太祖)를 도와 조선개국(朝鮮開國)에 공(功)을 세워 남양백(南陽伯)에 봉해진 김약해(金躍海)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남양(南陽)을 본관(本貫)으로 하였다. 김약해의 둘째 아들인 진사(進士) 김계(金桂)는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史禍)에 연루되어 평안도 신안(新安)[지금의 평안북도 정주시]으로 유배를 갔고, 이후 김계의 후손들은 신안에서 대대로 세거하였다. 남정섭(南廷燮)의 『조선과한보(朝鮮科宦譜)』에는 남양 김씨의 대표적인 인물로 현감을 지낸 김남선(金南賮) 등을 들고 있다. 남양 김씨는 김약해가 남양백에 봉해진 것을 계기로 남양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보인다. 김약해 이후 남양 김씨들이 화성 지역에 세거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양 김씨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경기도에 모두 810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화성시에 거주하는 인구는 30명이다.

남양김씨의 시조

김계

김계의 인생 개요

김계(이)가 1436년 한국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김약해(은)는 27세였고, 그의 어머니 김약해의 부인(은)는 23세였다. 그는 류씨(와)과 적어도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는 그의 고향에서 사망했다.

경기도

경기도

가족 연대표

1430

1440

1450

1460

김계
1436년–사망
류씨
1435년–사망
김보
1456년–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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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김씨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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