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풍김씨

海豊金氏

김숭선(金崇善)을 시조로 하고 김효신(金孝信)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연원해풍김씨는 고려 중기 예부상서를 지낸 김숭선을 시조로 한다. 시조 김숭선이 해풍부원군으로 봉군된 후 후손들이 해풍(海豊)을 본관으로 삼았다. 6세 김항(金沆)이 고려 말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랐다.입향 경위7세 김효신이 고려 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지키기 위해 봉산면 신암리에 은거함을 계기로 입향조가 되었고, 1472년(성종 3) 봉산면 신암리에서 태어난 9세 김시창(金始昌)이 충효를 몸소 실천하여 삼강행실에 올랐다. 14세 김응선(金應繕)이 사옹원봉사, 15세 김만형(金萬衡)이 조선 숙종 때 사마(司馬)에 들고 인품이 뛰어났다.현황후손 김상규에 의하면 2010년 2월 말 현재 김천 지역의 해풍김씨는 봉산면 신암리 고도암에 5가구, 태화리에 2가구, 다수동에 15가구가 살고 있다.관련 유적김천 지역의 해풍김씨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9세 김시창의 충효를 기리는 정려각이 집성촌인 고도암마을 입구에 있다. 정려문은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친필이다.[네이버 지식백과] 해풍김씨 [海豊金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해풍김씨의 시조

김숭선

김숭선의 인생 개요

김숭선(은)는 대략 1260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략 1288년 한국에서 김숭선의 부인(와)과 결혼했다. 그들은 적어도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는 그의 고향에서 사망했으며 한국 경기 개풍군에 묻혔다.

황해북도

황해북도

가족 연대표

1250

1260

1270

1280

1290

1300

1310

김숭선
1260년–사망
김숭선의 부인
1263년–사망
결혼: 대략 1288년
김천일
1290년–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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