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천김씨
熙川金氏
희천 김씨(熙川 金氏)는 자강도 희천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희천 김씨를 혹칭 위성 김씨(威城 金氏)라고도 한다. 위성(威城)은 곧 희천(熙川)의 별칭이다.역사시조 김용(金用)은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조(高麗朝)에 광정대부(匡靖大夫)를 역임하고 온양군(溫陽君)에 봉해졌다. 그의 5세손 김영비(金英庇)는 강계만호(江界萬戶)를 역임하였다.일설에 비조(鼻祖)를 검교한성윤(檢校漢城尹) 김영비(金英庇)라 하며, 그의 아들 김우(金宇)는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와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하고 조선초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록되고, 희천군(熙川君)에 봉해졌으며 사후 양정공(襄靖公) 시호를 하사 받았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그를 '중조'(中祖)로 삼고 본관(本貫)을 희천(熙川)으로 하였다.선계일설에 희천 김씨 선계는 경순왕 8자 일선군(一善君. 善山君) 김추(金錘)의 셋째 아들 김우(金佑)라 한다. 그는 고려 강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에 올라 온양부원군(溫陽府院君)에 봉해져 관향을 온양(溫陽)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고 한다.본관희천(熙川)은 평안북도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이다. 본래는 고구려의 영토였고, 발해(渤海) 때는 서경압록부(西京鴨綠府)에 속하였다. 한 때는 여진족이 점령하였으나 고려 초에 수복되어 청새진(淸塞鎭)이라 하였다. 1217년(고종 4) 서희(徐熙)가 거란의 침공을 막아 위주방어사(威州防禦使)로 승격되었다. 후에 서희의 이름을 따서 희주(熙州)로 고쳐 개주(价州: 价川)에서 현감(縣監)을 겸하게 되었다. 1396년(태조 5)에 희주군으로 독립하였고, 1413년(태종 13) 희천(熙川)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계부(江界府) 희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 평안북도 희주군이 되었다. 1949년 자강도가 신설되어 자강도에 편입되었다.
희천김씨의 시조
김용
김용의 인생 개요
김용(이)가 대략 1130년 한국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김이휴(은)는 27세였고, 그의 어머니 정씨(은)는 24세였다. 그는 대략 1154년 한국에서 신씨(와)과 결혼했다. 그들은 적어도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는 그의 고향에서 사망했다.
자강도

가족 연대표
1120
1130
1140
1150
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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