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박씨

密陽朴氏

밀양박씨는 우리나라 박씨 가운데 가장 큰 집안이에요. 전체 박씨 인구의 약 70~80%가 밀양박씨에 속하고, 인구는 약 300만 명으로 김해김씨 다음으로 많아요. 밀양박씨는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의 첫째 아들 박언침이 밀성대군으로 봉해지면서 시작되었고, 본관을 밀양으로 삼았어요. 박언침의 아들 박욱은 고려를 세운 왕건을 도와 큰 공을 세웠고, 높은 벼슬에 올랐어요. 그의 목상은 지금도 밀양시 내일동에 문화재로 남아 있어요. 밀양박씨는 이후 여러 갈래로 나뉘어 12개의 주요 파가 생겼고, 그 안에서도 다시 여러 파로 나뉘었어요. 밀양박씨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많은 인재를 배출했어요. 문과에 합격한 사람만 261명이나 되고, 궁중 음악을 개혁한 박연, 실학자 박제가 등 유명한 인물도 많아요. 고려 시대에는 박언부가 문하시중이라는 최고 벼슬에 올랐고, 그의 후손들도 여러 분야에서 활약했어요. 조선 시대에는 박사눌의 아들 박성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웠고, 박종남��� 전쟁 중 포로가 되었지만 끝까지 충절을 지켜 적장에게도 감동을 줬어요. 박영은 무예와 학문에 뛰어난 인물로, 도둑에게 납치될 뻔한 여인을 구한 일화도 전해져요. 그는 이후 벼슬을 그만두고 학문에만 몰두했어요. 박충원은 단종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영월군수로 자청해 부임했고, 제사를 지내며 변고를 막았어요. 그는 역사책 편찬에도 참여했고, 명종 때 높은 벼슬에 올랐어요. 그의 후손 박승종은 영의정까지 올랐지만, 광해군의 폭정에 괴로워하다가 아들과 함께 자결했어요. 밀양박씨는 충절과 학문, 무공으로 이름을 떨친 집안으로, 지금도 많은 후손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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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씨 시조

박언침

박언침의 생애 개요

박언침(이)가 대략 0887년 한국 경북 경주시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박승영(은)는 29세였고, 그의 어머니 김씨(은)는 29세였다. 그는 석씨(와)과 적어도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는 한국에서 사망했다.

가족 연대표

박언침
0887년–사망
석씨
0883년–사망
박욱
0900년–사망

박씨는 패밀리서치 데이터베이스의 다음 국가들에서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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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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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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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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