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양씨
濟州梁氏
제주양씨는 탐라국의 개국신인인 양을나를 도시조로 받드는 유서 깊은 성씨예요. 양을나는 한라산 북쪽 모흥혈에서 솟아난 세 신인 중 맏이로, 탐라국을 세운 인물로 전해지며, 그의 후손들이 제주를 중심으로 왕위를 이어갔어요. 이후 신라 진흥왕 때 양탕이 사신으로 입국해 양씨 성을 하사받았고, 그의 후손 양순은 682년 신라에 들어가 국학에 입학하고 한림학사에 올라 한라군에 봉해졌어요. 이로써 제주양씨는 본관을 제주로 삼고 육지로 진출하게 되었어요. 제주양씨는 남원양씨, 충주양씨 등으로 분적되었지만 모두 양을나를 시조로 하는 동계혈족이에요.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양팽손, 양호, 양주운, 양능양 등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했어요. 양팽손은 조광조와 함께 사림의 도를 지키며 끝까지 의리를 지킨 인물로, 혜강공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양호는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국방을 강조한 성주작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남원양씨의 중시조 양우량은 신라 경덕왕 때 남원부백에 봉해졌고, 충주양씨의 중시조 양능���은 고려 개국 때 왕건을 도와 삼한통일에 공을 세웠으며, 예성부원군에 봉해졌어요. 특히 둔암 양능양은 송나라에까지 알려진 예경의 대가로, 고려 왕실과 혼인하며 학문과 정치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어요. 제주양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4명, 무과 급제자 20명을 배출했고, 2000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약 133,355명이 등록되어 있어요. 제주도는 탐라국에서 시작해 고려와 원나라, 조선을 거치며 여러 행정적 변화를 겪었고, 1946년 제주도로 승격된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제주양씨는 탐라의 신화적 기원과 함께 학문, 정치, 군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배출하며 한국사의 중요한 뿌리를 이루고 있는 성씨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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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양씨 시조
양을나
양을나의 생애 개요
양을나(이)가 대략 0484년 한국 제주도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모불(은)는 1615세였고, 그의 어머니 모불의 부인(은)는 -648세였다. 그는 양을나의 부인(와)과 적어도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는 그의 고향에서 사망했다.
가족 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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