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여씨
星山呂氏
성주(성산) 여씨. 시조 여어매(呂御梅)는 여어(呂御)라고도 하는데, 중국 내주(萊州)사람으로 황소(黃巢)의 난을 피해 877년(헌강왕 7) 신라에 들어왔다. 고려 때 전서(典書)로 지내고 성주에 대대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 성산과 함양(咸陽)으로 분적되었으나, 중간에 보판(譜板)을 잃어버려 그 세차(世次)를 확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고려 말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른 여양유(呂良裕)를 중시조로 하여 후손들이 세거지인 성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성산여씨의 시조
여양유
여양유의 인생 개요
여양유(은)는 대략 1300년 한국 경북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씨(와)과 적어도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는 그의 고향에서 사망했다.
경상북도

가족 연대표
1290
1300
1310
1320
1330
1340
여양유
1300년–사망
이씨
1300년–사망
여위충
1318년–사망
여위현
1320년–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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