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성이씨
車城李氏
시조(始祖) 이위(李渭)는 호가 조은(釣隱)이며, 시호는 충숙공(忠肅公)으로 아버지 중서사인(中書舍人) 이사언(李嗣彦)과 공(公)에게 더불어 김명소(金明所)장군이 위해(危害)함으로써 고통을 겪다가 신라 경문왕조(景文王朝)에 토평하여 국난평정공신으로 차성군(車城君, 車城은 機張의 옛 이름)에 봉해졌다. 신라(新羅)에서 벼슬은 성주장군(城主將軍)을 지냈으며, 녹은 상서사(錄尙書事)하였다. 이어서 고려 공조전서후벽상공신(工曹典書後壁上功臣)으로 보국상대장군(輔國上大將軍)에 추증(追贈)되었다. 차성군으로 봉해진 것을 연유로 후손들이 차성(車城)에 잉거(仍居)하면서 관향 역시 차성(車城)으로 하며, 경주이씨(慶州李氏)에서 제일 먼저 분적(首分籍)하였다. 차성이씨(車城李氏)는 경주이씨(慶州李氏) 이사언(李嗣彦)의 둘째 아들인 이위(李渭)를 시조로 하여 기계(起系)하고 있다.
차성이씨의 시조
이위
이위의 인생 개요
이위(이)가 대략 0754년 한국 부산 기장군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이사언(은)는 25세였고, 그의 어머니 이사언의 부인(은)는 23세였다. 그는 김씨(와)과 적어도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는 그의 고향에서 사망했다.
경상남도

가족 연대표
740
750
760
770
780
이위
0754년–사망
김씨
0758년–사망
이환
0776년–사망
이진
0778년–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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