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임씨
醴泉林氏
예천임씨는 경상북도 예천을 본관으로 삼고 있는 성씨예요. 시조는 고려 의종 때 활동한 임춘으로, 그는 세상 밖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살았던 선비로 불렸고, 이인로와 오세재 등과 함께 ‘강좌 7현’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힐 만큼 한문과 시에 뛰어났어요. 임춘은 고려 평장사를 지낸 임계미의 후손으로, 진사에 급제한 뒤 1170년 정중부의 난이 일어나자 예천 천서리로 피신해 그곳에 정착했어요. 후손들은 이곳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게 되었어요. 예천은 신라 때 예천군으로 불렸고, 고려 태조 때 보주로 개칭되었다가 조선 태종 때 보천으로 바뀌었어요. 이후 다시 예천으로 환원되었고, 1914년 용궁군을 병합하면서 행정구역이 확대되었어요. 1937년에는 예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지금은 경북 북서부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예요. 예천임씨는 평택임씨에서 분관된 계통이며, 이후 경주임씨, 양양임씨, 밀양임씨, 안의임씨 등 여러 본관으로 갈라졌어요.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2명, 무과 6명, 생원진사시 9명 등 총 17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고, 학문과 무예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이 많았어요. 특히 순조 때 활동한 임경한은 서예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고, 중국에서도 그의 필체가 높이 평가되었어요. 그는 예천임씨의 문화적 자산을 대표하는 인물로, 예술과 학문을 겸비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어요. 인구조사에 따르면 예천임씨는 1985년에 14,321가구 59,721명, 2000년에는 18,301가구 58,403명으로 집계되었어요. 지금도 예천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그 뿌리를 지켜가며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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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임씨 시조
임춘
임춘의 생애 개요
임춘(이)가 대략 1255년에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임광비(은)는 43세였고, 그의 어머니 오씨(은)는 39세였다. 그는 전씨(와)과 적어도 세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두었다. 그는 한국에서 사망했다.
가족 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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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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