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임씨
豐川任氏
풍천임씨는 황해도 풍천을 본관으로 삼고 있는 성씨예요. 시조는 임온으로, 문헌에 따르면 중국 소홍부 자계현 출신이라고 해요. 그의 6세손인 임주가 1275년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 황녀인 제국공주를 배행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귀화했고, 추동안찰사와 어사대부, 감문위 대장군을 지낸 뒤 풍천을 본관으로 하사받았어요. 임주의 아들 대에서 풍천임씨는 크게 두 갈래로 ���뉘어요. 삼사판사를 지낸 임자송의 후손은 백파로, 민부전서를 지낸 임자순의 후손은 중파로 불려요. 중파는 전서공파라고도 하며, 그 안에서 정승공파와 사윤공파로 다시 나뉘어요. 정승공파는 고려 말 남포현에 정착한 향공의 후손으로, 남포파라고도 불려요. 이들은 이후 외성파, 내성파, 부당파로 나뉘고, 다시 황율파와 부여파, 간치파와 늑전파로 분파되었어요. 사윤공파는 조선 시대 아산 지역에 정착한 공의 후손으로, 아산파라고 불려요. 풍천임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만 144명을 배출했고, 호당에 6명이 들었으며 청백리 2명, 공신 1명, 장신 3명을 배출했어요. 학문과 관직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많았고, 지금도 전국 곳곳에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어요. 대표적인 집성촌으로는 경기도 포천군 창수면 운산리, 강원도 철원군 갈말면 내대리, 충남 보령시 미산면 근전리, 충북 옥천군 동이면 세산리, 경북 경주시 남산동, 전남 무안군 몽탄면 양장리 등이 있어요. 풍천은 고려 초에는 풍주로 불리다가 성종 때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예종 때 왕비 안순왕후의 외향이라는 이유로 풍천도호부로 다시 승격되었어요.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다가 1909년 풍천군이 폐지되어 송화군에 합병되었고, 1967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과일군으로 분리되었어요. 풍천임씨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문무를 겸비한 인재들을 배출했고, 지금도 그 뿌리를 지켜가며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요.

본관이 풍천임씨이십니까?
패밀리서치와 함께 가족의 이야기를 찾아보세요!
전 세계 수천 개의 기록 보관소와 도서관, 가족 및 종교 단체와 협력하여 소중한 가족 역사를 디지털화했습니다. 언제든 무료로 확인하세요.
내 성씨와 족보, 손쉽게 탐색하기
패밀리서치 계정에 로그인하면, 편리하게 당신의 가족 이야기와 가계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족보를 읽거나 사용하는 방법을 잘 모르시나요? 이용 안내 영상을 시청해 보세요.

풍천임씨 시조
임온
임온의 생애 개요
임온(이)가 대략 1062년 중국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임씨(은)는 28세였고, 그의 어머니 금씨(은)는 24세였다. 그는 대략 1157년 한국에서 임온의 부인(와)과 결혼했다. 그들은 적어도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는 한국에서 사망했다.
가족 연대표
임씨는 패밀리서치 데이터베이스의 다음 국가들에서 발견됩니다
한국
패밀리 트리에 있는 72,535명의 개인
중국 본토
패밀리 트리에 있는 7명의 개인
일본
패밀리 트리에 있는 4명의 개인